우리나라의 비행의 역사 (Histroy of Korean Aviation)
정부수립 이전의 항공 (Aviation Prior to Government Formation)
동력비행기가 우리나라에 첫 선을 보인 것은 1913년 일본해군 기술 장교가 서울 용산의 조선군 연병장에서 "나라하라 4호" 비행기로 공개 비행생사를 가진 것이 그 효시이다. 이는 미국 라이트 형제의 최초 동력비행 성공(1903.12.17)보다
10년 후였다.
1914년 일본인 다까소오가 최초 민간 항공인으로 용산에서 비행하였고, 1916년 10월 초 일본인 오자끼가 한국을 방문하고 최초로 유료비행을 하여 한국인들은 비행기를 처음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1917년에는 미국인 아트 스미스가 커티스호로 한국을 방문하여 비행하였으며, 1920년 5월 이태리 공군 페라린마세르가 세계일주 도중에 한국을 방문하여 비행하였다.
이후 일본비행사 자격증을 획득한 한국 청년은 이인기, 이상태, 장덕창 등 20여 명이었다. 이들은 차례로 모국방문 비행회를 가졌고, 특기 1927년 12월 24일 신용욱 비행사는 당시 가장 최신예기인 아보로식 제504호형 비행기 "타이거호"로 모국방문 비행회를 가졌다.
한편 남존여비 유교사상이 팽배하던 1925년 독립 운동가였던 권기옥은 중국 운남의 여군학고 제1기생으로 졸업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비행사가 되었고 다음 해 192년에는 이정선 여류비행사가 탄생하였다.
이후 각국 비행사들이 속속 한국 상공에서 비행하였으며, 이런 시대변화는 한국 청년들에게 새로운 항공 분야에 대한 희망과 모험의 자극을 불어넣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에 따라 많은 한국 젊은이들은 항공에 대한 도전과 실현을 모색하였고, 우리나라 최초 비행사인 안창남이 바로 그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안창남은 21세에 일본 오구리 비행학교에 입학하여 6개월 과정의 교육을 마치고, 다음 해 1921년 5월 비행면허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하여 한국인의 능력과 기개를 과시하였다. 또 일본 우편비행대회에 참가하여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
마침내 안창남은 1922년 12월 10일 12시22분 뉴포트 15형 단발 쌍엽 1인승 비행기 "금강호"로 여의도에서 5만여 명
관중이 보는 가운데 역사적인 모국방문 비행회를 가졌다. 안창남 모국방문 비행회는 항공에 관심이 많은 한국 젊은이들이 비행술을 익히고자 하는 커다란 동기가 되었으나, 비행교육에 많은 비용이 소요됨에 따라 재력이 없는 청년들은 꿈을 이루기 어려웠다.
트히 안창남이 비행사 자격 취득 1년 전인 1920년, 상해임시정부는 독립군 공군 양성목적으로 1920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비행학교를 설립하여, 이용근, 이초, 이용선, 오림하, 장병훈, 한장호 등의 비행사를 배출하였다. 이 비행학교는 1920년 1월 캘리포니아 주에서 대규모 쌀 농장을 경영하는 재미실업가 김종림 씨가 3만 달러를 임시정부에 희사하여, 비행기 2대, 미국인 기술자 1명을 고용, 한국청년 15명이 비행훈련을 받았다.
참고로 미국 내 비행학교 설립과 관련하여 당시 미국언론에서 보도한 내용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한국인들이 비행장을 소유하게 되다"라는 제하에 비행학교 설립 목적은 "우리는 우리 민족 젊은이들이 훌륭한 미국인이 되도록 훈련시키고자 함"에 있다고 하였으며 (한국인들이 비행장을 소유하여 비행훈련을 시키는 군사행동에 대해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이익과 평화를 위협한다고 간주할 것을 우려, 일본과의 독립전쟁을 위한 것이라 말할 수 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한 발언으로 판단됨) 김종림 씨의 주도적인 역할로 비행학교 설립을 추진하였고 퀸트 지역에 숙소를 임대하여 미국인 비행사 10명을 교관으로 고용하였으며, 비행기 1대와 40에이커의 비행장을 구입하였다. 향후 비행학교는 최신형 비행기 3대 구입, 비행기 격납고 신축과 정비사 2명을 고용하게 된다.
또한 상해임시정부 군무총장 노백린과 인터뷰 내용을 게재하였는데 그 내용은 "설립목적은 일본과의 독립전쟁에서 활약할 조종사 양성이다. 교관 요원은 레드우드에서 조종훈련 중이며, 3월 이수예정이고, 학교설립 운영을 위한 필수적인 교관과 정비사를 확보하고 학생은 캘리포니아 거주 한국 청년으로 구성한다. 후원금은 캘리포니아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들의 기부금으로 하고 비행장은 중국에도 건설계획 중이며, 향수 비행하교 발전계획은 글렌카운티 쌀 생산지대 3,000 에이커 규모로 발전하려 한다."이다.
최초의 항공인력 양성 (Initial Training of Aviation Personnel)
우리나라 비행학교는 신용욱이 한국인으로 1930년 5월 15일, 여의도에 조선비행학교를 설립한 것이 처음이다.
또한 신용욱은 조선비행학교를 운영하면서, 일본 나카지마 비행기 제작소의 지도리식 4인승 쌍엽기를 도입하여 1930년 9월 부터 사울상공 일주, 인천 왕복유료비행을 실시하였다. 이 유료비행은 신용욱이 조선항공사업사를 설립하기 직전인 1935년까지 계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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